1. 인도 선택의 세가지 변수 : 시장의 크기와 성숙도, 성장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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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인도였습니까. 미국이나 일본 같은 규모가 크지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 동남아 같은 신흥 시장도 있는데요.
“세 가지 기준으로 신규 사업 서비스 시장을 골랐습니다. 첫 번째는 시장의 크기였고요, 두 번째는 시장의 성장 속도였고, 세 번째는 시장의 성숙도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시장이 얼마나 크냐, 그리고 매년 얼마나 성장하느냐를 본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7%~ 10%만 성장해도 엄청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20~30% 성장한다고 하면, 엄청난 성장인 거죠. 인도는 핀테크 시장이 매년 30~ 50% 성장하니까, 성장세가 대단합니다. 너무 성숙한 시장이면 경쟁이 심해져서 레드오션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인도 핀테크는 그럴 우려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봤을 때 인도가 가장 확실했습니다. 특히 핀테크는 인도가 굉장히 강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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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는 금융이 성숙한 국가에서도 제도와 레거시 금융업의 장벽 때문에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20~30년 전부터 레거시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인터넷 뱅킹도 가능했고, 신용카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캐시리스 이코노미나 디지털 이코노미가 몇 십 년 전부터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신용카드 수가 1억 장 조금 넘습니다.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수준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들까지 신용카드를 다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디지털 금융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던 곳에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현금에서 바로 모바일로 넘어간 겁니다. 다른 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 분야에서 특히 큰 변화가 일어난 거죠. 안 되던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서비스들은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정도였다면, 금융은 그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걸 1에서 2로 가느냐, 아니면 0에서 1로 가느냐로 표현하는데요. 토스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도 사실은 편하게 만든 거지, 송금이 안 됐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출이 안 됐던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인도는 달랐습니다. 대출을 못 받던 사람들이 대출을 받게 되었고, 현금으로만 하던 결제를 QR 코드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적인 가치나 기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개발도상국의 핀테크가 성공할 수밖에 없고, 그 파급력이 굉장히 큰 것이죠. 밸런스히어로가 인도 시장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 때문입니다. 서비스의 리텐션이나 중독성, 그리고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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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인도 시장을 노리는 해외 기업도 많습니다. 그런데 인도에 대해서 좀 아셨나요?
“인도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2001년 와이더댄(과거 SK텔레콤 자회사로 나스닥에 상장)이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해외 서비스를 담당했습니다. 아시아 시장을 상대로 하는 해외 서비스만 계속했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호주, 싱가포르, 베트남 등 주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 사업을 담당했으니까요. 2006년 창업했던 액세스모바일도 주력 시장이 동남아시아였으니까요. 저에겐 인도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 시장, 한국에서 비즈니스가 더 어렵죠. 지금도 1년의 절반을 인도에서 보내고,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거의 매년 1년의 절반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있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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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스의 한 킴 대표님은 ‘한국에서 잘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한국 시장에서 잘하는 것이 기본기, 기본기부터 다져야 한다’고 했셨습니다. 배민이나 쿠팡 같은 성공 사례도 있고요.
“창업하는 스타트업들이나 사업하시는 분들이 해외 사업, 특히 인도 사업이 어렵지 않냐고 물어보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출신 국가가 아닌 모든 나라는 다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제가 인도를 좀 안다고 해도,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성장성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한국에서 사업하면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을까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기준에 모두 맞지 않아요. 시장도 작고, 성장률도 낮고, 경쟁은 엄청나게 치열한 레드오션이죠. 여기서 사업해봤자, 밸런스히어로가 지난 4년 동안 14배 성장한 것처럼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한국은 매년 5~10%성장하면 많이 성장하는 겁니다. 스타트업은 이보다 조금 낫겠지만요. 시장의 성숙도, 성장성, 크기를 고려하면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보다 인도나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사업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죠. 하지만 스타트업이 하고자하는 업과 상황에 따라 제가 이야기하는 세 가지 기준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